작년 미술계의 최대 이슈는 이건희 컬렉션 전시였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유가족들은 2021년 4월 고미술품 2만 1693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산하 박물관에, 미술 작품 1488점은 국립현대미술관 및 지방 공립미술관에 아무 조건 없이 기증하였다. 작년 7월 21일부터 올해 6월 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최된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은 코로나 시국에는 예약제로 운영되어 순식간에 마감되었고, 코로나가 완화된 이후에는 미술관 밖까지 긴 대기 줄이 이어져 1~2시간을 기다려야 볼 수 있었다. 아마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건희 컬렉션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평생 기증을 실천하신 손세기(1903~1983)·손창근(1926~ ) 부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개성 출신 실업가였던 손세기 선생은 사업을 하며 쌓은 부로 국보급 고서화 등을 수집하였고, 소장품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신념을 갖고 사신 분이셨다. 손세기 선생은 1974년 서강대에 고서화 200여 점을 기증하였고, 선친의 정신을 계승한 아들 손창근 선생은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회에 연구 기금 1억 원을 기부하였고, 2012년에는 경기도 용인의 산림 200만 평(서울 남산의 두 배 면적)을 국가에 기증하였다. 그 산림은 손씨 부자가 50년 동안 잣나무·낙엽송 200만 그루를 심고 분신처럼 가꿔온 땅이었는데, 당시 산림청 직원들은 시가 1000억 원에 달하는 임야를 ‘아무 조건 없이’ 기증한 손창근 선생의 얼굴도 몰랐다고 한다. 손창근 선생이 88세가 되던 2017년에는 50억 원 상당의 건물과 현금 1억 원을 KAIST에 기부하였다.
2018년에는 손세기·손창근 컬렉션이라 불리우는 304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컬렉션은 추사의 걸작 ‘불이선란도’를 포함해 15세기 최초의 한글 서적 ‘용비어천가’ 초간본(1447년)과 17세기 명필 오준·조문수의 서예 작품, 18~20세기 초 대표적인 한국 서화가인 정선·심사정·김득신·김정희·전기·김수철·허련·장승업·남계우·안중식·조석진·이한복 등의 작품, 그리고 오재순·장승업·흥선대원군 등의 인장을 아우른다. 그리고 마침내 2020년에는 전문가들도 값을 매길 수 없다는, 마지막 남은 한 점인 ‘세한도’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손창근 선생은 기부나 기증 시 “자식들도 동의하였다”는 점만을 말씀하셨다. 이 두 분의 삶과 정신을 생각하면,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 때 보다 더한 숙연함에 저절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나오게 된다.
우리에게도 저절로 존경심이 나오는 전국적인 사례가 있다. 광주를 기반으로 하는 건설업체인 TG영무 박헌택 회장은 조용히 우리 지역 미술가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작업실을 제공하는 메세나 활동을 매년 하고 있다. ‘김냇과’라는 복합 문화공간을 광주에만 3호점까지 만들어 지역 청년작가들에게 전시 공간과 작업 공간을 제공하고 있고, 미술을 넘어 음악 공연으로까지 확장하여 ‘김냇과 트리오’라는 민간 공연단체를 만들어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남대에 3억 원의 발전 기금을 아무 조건 없이 기부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전국적으로 지속적인 사회공헌 사업을 회사 차원에서 실천하고 있다. 광주에서 태어난 기업이 광주를 넘어 전국으로 메세나 운동을 확산시키는 아름다운 사례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제2의 손창근 선생이 우리 광주에서 나올 것으로 믿는다.
올해 광주시에서도 ‘광주형 문화 메세나 문화 동행’ 사업을 시작하여, 개인이나 단체 또는 법인이 한 예술가에게 일정 금액을 기부하면 그 만큼의 금액을 더해서 지원하는 ‘광주 문화예술 기부금 매칭’ 사업을 광주문화재단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이는 민간이 아니라 지자체에서 메세나 운동을 활성화하는 사업으로 전국 최초의 일이다. TG영무 박헌택 회장이 광주에서 문화예술 메세나 운동의 사회적 선구자였다면, 이제 제2·제3의 박헌택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제도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아무 조건 없는’ 기부가 이어질 것이다. 외부에 의지하지 않고 광주만의 힘으로 시작되어 의미가 더 깊다. 문화예술이 꽃피는 도시,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다.